정주영과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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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과 거북선
  •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8.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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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을 탄생시키는 과정(1970~72년)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일화(신화)는 세간에 대체로 이렇게 알려져 있다: 아산이 조선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을 빌리러 영국의 바클레이스은행을 찾았는데 은행 측에서 거절하자 아산은 은행의 담당 임원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이면서 한국이 영국보다 철선을 훨씬 먼저 건조한 나라임을 설명해, 그 임원을 설득했고 차관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조선소가 만들어지면 지어질 배를 사줄 사람을 찾다가 그리스의 한 선주를 만나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보여주고 배 주문을 받아냈다.

이 스토리는 일단 재미있기 때문에 반복되면서 전설로 굳어졌고 아마도 아산의 경이로운 사업가적 역량을 소개하는 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일화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좀 ‘옛날’이기는 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큰돈이 그런 감성적인 어프로치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 은행에서 소액의 개인대출을 받는데도 철저한 신용조사와 산더미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당시는 어떤 여건이어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거북선 그림만 보고 차관을 승인해 준 그 임원은 과연 무사했을까. 도대체 아직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 배를 주문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러나 아산의 회고록만 보아도 이 이야기가 세간에서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로 오랫동안 통용되고 굳어진 것을 쉽게 알 수 있다(이 땅에 태어나서, 160~181). 현대중공업이 탄생하는데는 요즘과 다름없는 무수한 협상과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었고 사업계획서를 포함한 방대한 서류와 자료들이 동원되었다. 이야기를 재미있고 간결히 전달하는 과정에서 거북선과 백사장에 초점이 맞추어졌을 수 있지만 아산은 그 모든 과정을 상세히 회고한다.

첫째, 거북선 그림은 은행 임원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영국의 A&P애플도어 회장 롱바톰에게 보여준 것이다. 현재의 A&P그룹인 A&P애플도어는 해양엔지니어링 회사인데 현대가 계획한 조선소의 레이아웃을 작성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들은 글래스고에 있는 조선소에서 현대맨들이 선박건조기술을 습득하는 훈련을 받도록 주선도 했다. 물론 모든 것은 유상이었다. 돈을 얼마 주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데 서독의 한 회사가 1년반~2년의 시간에 580만 달러를 요구했고 그렇게 긴 시간이 없었던 아산이 6개월을 제시한 롱바톰에게 용역을 주었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금액이었을 것이다.

둘째, 롱바톰을 아산에게 소개한 사람은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차관 브로커다. 미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였다. 유럽의 몇몇 금융기관을 추천했고 거래 조건과 관련 인물들의 성격까지 다 파악해 주었다고 한다. 바클레이스는 이 사람이 권한 것이다.

셋째, 아산은 임원들에게 바클레이스와 협상을 시작하게 했는데 바클레이스가 현대 측의 신용을 미덥지 않게 보아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여기서 아산이 롱바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롱바톰은 희소식을 전해주지 못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거북선 그림이 그려진 500원 지폐가 등장한다. 아산은 롱바톰에게 거북선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잠재력을 역설했다. 그러자 롱바톰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현대건설의 고리원자력 시공 경험, 정유공장 건설 경험 등을 들면서 대형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었고 현대는 글래스고의 조선소에서 선박 도면을 작성한 후 함께 바클레이스에 보냈다. 즉, 롱바톰은 이전에는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느껴진다. 사실 자기가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넷째, 바클레이스는 그 추천서와는 별도로 현대의 차관신청서를 심사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필요한 장소를 답사했다. 이사회가 거듭되었다. 아산은 “그들은 일체의 동양식 막후 접촉이나 정치적 압력을 완벽하게 금기시하고 배제했다”고 말한다(175). 그리고는 마침내 차관을 승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바클레이스는 현대의 사업계획서를 영국 수출보증국(ECGD)으로 보내주었다. ECGD의 보증이 있어야 은행이 대출을 집행할 수 있다.

다섯째, ECGD는 바클레이스의 판단을 신뢰하고 현대의 대출금 상환능력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4000만~5000만 달러나 하는 배를 사줄 사람이 없으면 문제이니 배를 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이라는 요구를 제시했다. 아산은 조선소 부지로 선정한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선주를 찾았다. 여기서 빠트리기 쉬운 것이 글래스고 조선소에서 작성한 유조선 도면도 함께 들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사업계획서도 물론 같이 했을 것이다.

여섯째, 아산의 표현대로 ‘나보다 더 미친’ 선주 리바노스를 찾아준 사람은 A&P의 한 임원이었다. 이튼스쿨 동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문이 또 있다. 리바노스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어서 백사장 사진만 보고 발주를 했을까. 답은 가격을 포함한 거래 조건이다.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이 제시되었고 선수금도 크지 않은 액수로 했다. 배를 약속대로 인도하지 못하면 선수금에 이자를 붙여 반환하고 은행의 지불보증도 주겠다. 배에 하자가 있으면 인수하지 않아도 좋고 그동안 지불한 돈은 전액 환불한다. 그러자 리바노스는 선수금을 냈고 ECGD는 그 영수증을 보고 차관을 승인했고 바클레이스는 돈을 내주었다.

리바노스는 당시 두 척을 주문했는데 나중에 오일쇼크로 글로벌 해운경기가 나빠지자 그중 한 척의 인수를 차일피일 미루어서 아산의 속을 썩였다. 그러자 아산은 그 배와 다른 선주가 찾아가지 않은 두 척을 합해 세 척으로 현대상선을 설립해버렸다. 리바노스는 본의 아니게 한국 최대 선사의 탄생에도 도움을 준 것이다(191~196).

우리가 잘 아는 거북선과 백사장 사진 스토리의 전말은 이랬던 것이다. 요즘과 전혀 다름없는 신중한 금융거래 과정과 은행의 경영판단 과정이 따랐다. 은행 임원이 거북선 그림에 설득되어서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는 행동으로 덜컥 돈을 빌려준 것도 아니고 백사장 사진만 보고 대형 유조선 두 척의 주문이 들어온 것도 아니다. 거북선 스토리는 다분히 동양적인 느낌도 주는데 실제로는 철저히 서양적인 엄중한 프로세스가 진행되었고 현대는 그 요건들을 다 충족했기 때문에 합격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 아는 이야기는 과장인 동시에 겸손인 셈이다.

어쨌든 오늘날 한국 조선산업은 아산이 이순신 장군의 ‘협조’를 받아 출범한 것이다. 12척으로 330척의 왜군을 막던 이순신 장군은 조선이 훗날 일본을 넘어 세계 1위의 조선국가가 된 것을 알면 감격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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