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제 강점기 수탈 현장을 찾아서 / "백월산을 ’역사 교육 체험장’으로 조성하자"

아름드리 소나무 일제 수탈 상흔 아직도 치유 안 돼 산에 퇴적암, 조약돌, 조개껍질 많아 연구가치 높아 보령 해저터널 개통되면 서해안 관광 벨트 조성한 몫

2019-07-30     최택환 기자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죄에 대한 사죄는커녕 기습적으로 발표한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 만행의 상처가 남아 있는 백월산을 역사 교육장으로 만들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일본식 성명 강요( 창씨개명), 전통문화 유산 말살, 민족정기를 끊겠다고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때려 박았다.

소나무 껍질 벗겨진 채 속살 드러내

심지어는 산에 있는 소나무 껍질까지 벗기고, 송진을 채취한 수탈의 상흔이 광복 74주년을 맞이한 현재까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에 있는 백월산( 해발 571m)이 바로 그곳이다

백월산은 청양군 남양면과 부여군 외산면, 보령시 청라면과 경계를 이룬 금북정맥에 속해 있다.

이곳에는 수령 150년 안팎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조약돌과 조개껍질이 박힌 바위, 그냥 마셔도 될만한 개울의 물이 좋은 산이다.

무엇보다 백월산이 좋은 것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마간산(走馬看山: 말을 타고 산을 바라본다) 식으로 그냥 스쳐지나 다 보니 수탈의 흔적을 보지 못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수의 이곳 소나무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제가 기름이 부족하여지자 이를 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소나무에 흠집을 내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나무 깊숙하게 파놓은 홈에서 송진이 흘러내리면 깡통으로 받아내어 인근에 있는 송탄유 공장에서 송유를 추출했다.

깊은 상처에 속살 드러낸 채 74년 견뎌와

이처럼 깊은 상처를 입고 속살을 드러낸 채 74년을 견뎌오고 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소나무에 ‘V'자 형태로 톱질을 가해 송진을 채취한 피해목들이다.

당시 피해목들이 이제는 거목으로 성장하여 일제 강점의 고통을 간직한 채 아픈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백월산에 빼곡이 들어찬 소나무들이 많아 ‘와! 정말 좋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만 왜 소나무 껍질이 벗겨져 있는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평소 백월산을 많이 찾는다는 정 모 씨도 인근 마을에 살면서도 소나무가 그렇게 된 사연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산을 찾는 이들 대부분 정 모 씨처럼 소나무에 대한 사연을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제에 의한 소나무 훼손 현장을 살아 있는 역사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퇴적암, 조개껍질 발견, 학술 가치 높아

백월산이 역사 교육의 장으로 조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산에서는 보기 드문 퇴적토에 조약돌이 박혀 있는 바위들을 볼 수 있다.

마치 큰 바위에 강자갈을 시멘트와 버무려 놓은 것 같이 착각할 정도의 퇴적암들이 무수하다.

이곳에는 큰 조개껍질도 볼 수 있는 지질학적으로 연구가치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수억 년 전 이곳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배가 드나들었다는 ’배울‘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백월산은 현재 충청남도 소유이다.

도유지로 약 150ha에 달하는 수려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데다 세종 행복 도시(60km), 내포신도시(30km) 등 가까운 거리에 있고 보령 해저터널이 개통되면 접근성은 더욱 좋아진다.

특히 백월산 정상에서 대천 해수욕장 등 서해안 앞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부여, 홍성, 보령시 등 인근 시군과 연계한 관광 지구를 형성할 수 있어 역사와 체험의 학습장으로 최적이라는 것.

백월산을 역사 교육과 체험 현장으로 가꾸자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곳이 도유림이어서 충남도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우리 다같이 지혜를 모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