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맛보기】 4. 호떡, 호박,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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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맛보기】 4. 호떡, 호박, 호두
  • 강구일 자유기고가(media cheong yang)
  • 승인 2019.11.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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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호자로 시작하는 음식 이름 많아

팬 위에서 갓 구워낸 뜨거운 호떡을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그 맛이 가히 환상적이다.

너무 뜨거워서 제대로 삼키지 못하면 그 내용물이 그대로 흘러나온다. 흐르는 내용물이 아깝다고 어렵사리 입안으로 삼키거나 손으로 받치면 뜨거운 맛을 볼 수밖에 없다.

한 번쯤은 있었음 직한 경험이다. 호떡 안에는 설탕같이 달곰한 것이 들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 호떡이 들어온 그것은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0년대로 알려져 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에 육군 3,000명을 파견했다. 이때 청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청나라 상인들도 함께 왔다.

 원래 중동에서 들여온 호밀<br>
 원래 중동에서 들여온 호밀

임오군란 이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은 상인들은 생계를 위해 호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중국 음식들을 팔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조청이나 꿀을 호떡에 넣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식 호떡의 시작인 셈이다. 이 호떡이 화교들이 살던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원래 호떡은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중국에 들어온 떡이다. 과거 중국인은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종족이나 국가를 ‘동이서융 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고 하여 자기들과 구별하였다.

특히 호는 진 · 한 시대에는 흉노를, 당나라 때는 서역의 여러 민족을 일컬었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진족을 '호'라 불렀다.

박과 비슷하다고 호박이라고 이름 붙였다.<br>
박과 비슷하다고 호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가운데 서역은 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아랍 지역을 말하는데 이 지역은 쌀보다 밀 재배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밀로 만든 음식이 많았다.

▶외지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호(胡)~

중국에서는 서역 사람들을 '오랑캐 胡(호)' 자를 사용해 호인이라고 불렀다.

서역인들이 먹던 음식이 한나라에 들어오자 자기들의 떡과 차이를 두기 위해서 '호떡(호인들이 먹는 떡)'이라 불렀다. 서역에서 들어온 초기 호떡은 달콤한 소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형태였다.

이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들어오자 그것에 맞게 변화하면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어 지역별, 업소별로 다른 형태, 다른 내용물의 호떡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 한국전쟁 때 피난처에서 호떡 안에 여러 곡식의 씨앗을 넣었는데

굽고 있는 호떡<br>
굽고 있는 호떡

이것이 그 유명한 씨앗호떡이다. 요즈음에는 견과류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넣은 호떡들이 팔리고 있다.

또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거나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재료를 완비해서 팔기도 한다. 최근 호떡의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과 재료를 다양하게 넣는 만두를 접목한 ‘호떡 만두’를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특징을 알 수 있는 ‘달콤 씨앗 호떡 만두’와 ‘사천식 매콤 호떡 만두’, ‘모짜렐라 호떡 만두’ 등도 판매되고 있다.

필자는 1970~80년대 대전 목척교 인근에서 팔던 꿀빵이라는 호떡을 좋아했다. 안에 아주 많이 달은 소가 들었지만 소위 공갈빵처럼 딱딱한 호떡이었다. 속은 달고 겉은 바삭바삭한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는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공장에서 제품화된 여러 가지 호떡<br>
식품업체에서 제품화된 호떡

이 말은 일본의 계략으로 벌어진 일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1931년 중국 지린성 창춘현 만보산 지역에서 일본의 계략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사이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일로 인해 국내 각지에서 중국인 배척 운동이 일어나 중국인 상점과 호떡집이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이 유행했고,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 됐다.

호떡에서 쓰이는 ‘호(胡)’처럼 우리말에서 ‘호(胡)’는 '중국에서 들여온'이란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이고 있다. 대부분 서역에서 들어왔지만, 중국의 북쪽에서 들어온 것들도 있다. 호주머니는 원래 우리 민족에 없던 것이다.

천소영 교수는 <우리말의 문화 찾기>에서 “원래 우리 한복에 없던 것인데 북방 민족의 풍습이 들어와 바지 허리춤 부근에 덧대어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호주머니'라 부르게 됐다”라고 밝혔다.

처음 페르시아(현재의 이란)에서 자생하던 호두는 한무제 때 장건이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국으로 갖고 왔다. 우리나라에는 호도(胡桃)라고 들어왔는데, 음운변천으로 '호두'가 표준어가 됐다.

공장에서 제품화된 여러 가지 호떡<br>
식품업체에서 제품화된 호떡

호두알맹이를 속에 넣어 호두 모양으로 만든 과자가 호두과자이다. 후추 역시 장건이 갖고 와서 호초(胡椒)라 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호초는 음운 변화를 거쳐 후추로 부르고 있다. 호박은 박과 유사한 것으로 남쪽 오랑캐로부터 전래한 것이라 하여 호박이라 부르게 됐다.

▶실크로드를 따라온 호두, 호밀

호각(胡角) 역시 만주인이 불던 뿔로 만든 피리를 말한다. 이밖에도 호파(만주 지방에서 나는 파), 호콩(땅콩), 호고추(중국 동북 지방에서 나는 고추), 호밀(원산지 중동지역) 등도 외국에서 들어와 ‘호(胡)’자를 넣어 작명한 것이다.

참고로 겨울철 인기를 끌었던 호빵은 호(胡)와 아무 관련이 없다. 1971년 삼립식품에서 만든 호빵은 ‘호호 불어먹는 빵’이란 의미로 이름 붙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호(胡)’는 중국을 통하여 들여온 서역과 우리 북쪽 지역의 문물을 쉽게 이름 지을 때 이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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