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맛보기】 5. 도루묵,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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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맛보기】 5. 도루묵, 돌
  • 강구일 자유기고자(media cheong yang)
  • 승인 2019.12.1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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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생김새나 빛깔을 보면 은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br>
도루묵-생김새나 빛깔을 보면 은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선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전란 중이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잘 먹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때 백성 하나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임금에게 바쳤다.

이를 먹은 임금은 맛이 너무 좋다며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환궁한 선조는 문득 은어가 생각나 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다시 먹어보았으나 예전과 전혀 달랐다.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는 “도로 묵이라고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루묵’이 되었다는 얘기가 인구에 회자해 왔다.

▶근거 없는 고사와 얽혀 엉뚱한 어원으로 변화

이 이야기와 비슷한 다른 얘기도 전해온다. 고려의 어느 왕이 동천(東遷, 동쪽으로 옮김)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로 설명하는 것이 하나다. 또 인조(仁祖)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물고기의 본래 이름 ‘묵’이 아니라 ‘목(目, 木)’이라고도 한다. 이에 따라 ‘도루묵’을 ‘도루목’으로 보고 ‘환목(還目)’ 또는 ‘환목(還木)’이라는 한자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어찌됐던 왕이나 시대는 달라도 도루묵에 대한 얘기는 동일하다.

위에 나온 도루묵의 어원이 맞는 것일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답을 알아보자.

돈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야생의 돌나물 <br>
돈나물이라고도 불리는 야생의 돌나물

우리말에는 맨 앞에 ‘돌’이 들어가는 단어가 꽤 많다. 특히 생물을 가리키는 이름이 흔하다. ‘돌배’, ‘돌나물’, ‘돌사과’, ‘돌복숭아’, ‘돌팥’, ‘돌돔’, ‘돌마자’, ‘돌메기’, ‘돌농어’, ‘돌삼치,’ ‘돌상어’, ‘돌가자미’, ‘돌붕어’, ‘돌잉어’ 등.

도루묵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던 흔한 생선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가격이 비교적 싸서 각 가정에서 찌개, 소금구이, 찜 등으로 조리해서 먹었다. 또한 값싼 술안주로 애용해왔다.

도루묵은 우리나라 동해를 비롯해서 알래스카주, 사할린섬, 캄차카반도 등의 북태평양 해역에 분포하는 어종이다. 10~11월 초순에는 산란 준비기라 다른 시기보다 살이 오르고 기름지다.

▶돌- 石(석) 또는 저질, 흔함, 좋지 않은 모양새

일반적으로 도루묵은 맛이 별로 없다고 알려져 왔으나 산란을 앞둔 암컷은 그 맛을 별미로 친다. 그래서 10월에 잡은 것을 냉동시켜서 연중 사용하는 식당도 있다.

흔하고 질이 떨어지는 야생의 배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돌배나무 <br>
흔하고 질이 떨어지는 야생의 배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돌배나무

옛 문헌에는 ‘도루묵’이 ‘돌목’으로 나온다. 돌목은 ‘목’이라는 물고기 이름에 ‘돌’이 붙은 것이다. 물고기 가운데는 ‘돌목’과 같이 ‘돌’이 붙는 것들이 많다. ‘돌돔’, ‘돌마자’, ‘돌메기’, ‘돌농어’, ‘돌삼치,’ ‘돌상어’, ‘돌가자미’, ‘돌붕어’, ‘돌잉어’ 등.

위 이름에 들어간 ‘돌-’은 두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한가지는 ‘돌(石)’의 뜻이다. 주로 작은 돌이나 자갈, 또는 바위 밑에서 사는 물고기의 경우 ‘돌’을 이용하여 이름을 지었다.

또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물고기의 이름에 넣은 것이다. 즉, 이들 ‘돌’이 들어가는 물고기들은 흔하고, 질이 떨어지거나 모양새가 썩 좋지 않다.

▶‘돌나물’ 같은 식물 이름에 사용한 ‘돌-’ 야생의 의미

‘돌-’은 ‘돌배’, ‘돌나물’, ‘돌사과’, ‘돌복숭아’, ‘돌팥’ 등과 같은 식물 이름에도 사용됐다. 이 경우에는 저질이라는 것보다는 야생의 것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도루묵을 이용한 도루묵찜<br>
도루묵을 이용한 도루묵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돌목’ 즉, 도루묵은 ‘목’이라는 물고기 가운데 질이 좀 떨어지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양새는 은어라고 불릴 정도여서 볼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히 맛도 없고, 다른 고기에 비해 기름지지도 않아 붙은 이름이다. 이 ‘돌목’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도르목’으로 됐다가 ‘도루목’, ‘도루묵’으로 변화한 것이다.

▶말짱도루묵- 소득이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의 뜻

결국 도루묵은 다시 ‘묵’이 된 고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도루묵이었다. 따라서 도루묵에서 ‘도로’의 의미는 위에 나온 애기들처럼 ‘다시’라는 말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구전되거나 책에도 나오는 등 너무 그럴듯해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고사를 사실로 믿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원을 엉뚱하게 알고 나서 그를 바탕으로 어원과는 상관이 없는 “말짱 도루묵”이란 관용구마저 생겨난 것이다.

“말짱 도루묵”은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때로는 말짱(속속들이 모두)을 빼고서 그냥 “도루묵”이라고 해도 “말짱 도루묵”이란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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