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화의 미생물이야기】 5,세상에나 대변은행이 존재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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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화의 미생물이야기】 5,세상에나 대변은행이 존재한다구!
  •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백경화(media cheong yang)
  • 승인 2019.11.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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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우리 속담 중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지금까지도 흔히 회자되고 있는데, 평소엔 흔하던 것도 쓰려고 구하면 없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말 개똥을 약에 썼을까? 동의보감에는 흰 개의 똥은 종기나 고름에 좋고 어혈을 다스릴 때는 개똥을 태워 술에 타 먹으면 효과가 좋다고 나와 있다.

본초강목에는 냇가의 장돌 위에 오래 삭은 개똥은 약에 쓰며, 오래되어 먼지처럼 하얗게 갈라진 강아지 똥은 누창 등의 독을 치료한다고 보고되었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의 한의서에서 똥물은 “인중황”이라고 하여 약재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먹을 것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약을 쓸 수 없어 이것저것 찾아보다 얻은 지혜일 것이다.

사람은 어떨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들은 아기의 변 냄새, 색깔, 농도 등을 유심히 관찰했을 것이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의 대변상태는 매우 중요했기에 변의 냄새, 색깔, 농도 등을 면밀히 관찰함은 물론 심지어 맛까지 보아가며 변을 확인하고 그 결과물로 왕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관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변과 건강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람의 대변 1g에는 약 1천 종류의 미생물이 1천억~1조개 가량 살고 있는데 이 미생물의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한다

. 장 속에 나쁜 균이 많아지면 질병을 초래하게 되고 염증은 “장내세균”과 매우 관계가 깊은데 건강한 장이라면 좋은 균 85%, 나쁜 균 15%정도를 우리 몸속에 유지해야 한다.

대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대변을 보관하는 대변은행이 생겨나고 있다. 대변은행에서 대변을 수집하는 이유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을 아픈 사람의 장에 이식하는 대변미생물 이식술을 하기 위해서이다.

대변 이식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감염증(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 CDI) 같은 질병에 유용할 수 있다(그림 1). 이 병은 건강한 성인 2~5%의 장내에 상재하고 있는 미생물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항생제 복용 후 장내에서 증가해 독소를 생산하며 설사 등을 유발하는 장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자신이 대변을 흘리고도 모를 만큼 아주 묽은 설사가 나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인용 기저귀를 차야 할 정도라고 한다. 설사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대장을 제거해야 하며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입원 환자의 항생제 치료 과정 중 발생하는 이 병은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 미국에서만 한 해에 50만명이 발생해 2만9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보고되었으며, 네덜란드의 경우 CDI 진단을 받는 환자가 매년 3000명에 달한다고 보고되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균은 평소 사람의 장내에서 조용히 살지만, 수술 등의 이유로 장기간 항생제를 투여할 경우 폭발적으로 증식하게 된다.

그런데 예전엔 CDI에 걸리면 항생제를 투여해 치료하려고 했다. 항생제에 의해 유발된 병을 다시 항생제로써 치료하려고 했던 셈이다.

▶대변으로 의료 관련 감염병 치료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투여하게 되면 CDI가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의 장내에 주입하는 ‘대변이식술’이라는 치료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대변이식술’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제공받아 급속으로 냉동, 특수처리해 장내 미생물 용액으로 만든 뒤 내시경, 관장 등의 방법을 통해 환자의 장에 직접 주입하는 치료법이다(그림 2).

이 치료법은 미국·캐나다·유럽 등에서는 이미 공인된 치료법으로 국내에서는 2016년 대변이식술이 신의료기술로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아시아 최초 대변은행 '골드 바이옴'이 설립됐다). 대변이식술은 특히 항생제 치료 후 재발률이 높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 장염에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대변이식을 통해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밸런스를 맞춰줌으로써 약물로 제어하기 힘든 장염 극복에 도움을 준다.

최초의 대변은행은 2012년 보스턴에 설립된 비영리기구인‘오픈바이옴(OpenBiome)’으로 현재 세계 최대 규모다.

2015년 3월에는 캘리포니아 사크라멘토에 ‘어드밴싱바이오(AdvancingBio)’라는 대변은행이 설립되었다. 특히 오픈바이옴은 2015년 10월 기준 미국과 7개 국가에 6천 건의 대변을 공급하였으며, 기증된 대변 샘플 하나당 40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현재 OpenBiome에서는 캡슐 형태의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이식 의약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제약 스타트업인 ‘세레스 테라퓨틱스’사는 대변 이식을 하지 않고도 CDI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 중이다. ‘SER-109’라는 정제가 바로 그것인데, 이 약의 재료는 대변에서 추출한 포자를 살균, 정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신약의 중기단계 임상시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분간 CDI의 치료는 대변은행을 통한 대변이식 밖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대변이식의 효과가 입증된 것은 CDI 치료가 유일하다. 하지만 대변이식술은 여러 증상을 대상으로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기에 대한 시술이다.

제왕절개의 경우 정상 분만으로 태어나는 아기보다 미생물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장 속에 살고 있는 세균은 약 100조 개로서, 무게만 해도 1.5㎏에 달한다. 대변에는 대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포함되어 배출되는데, 대변에서 수분을 뺀 나머지의 40% 정도가 미생물이다.

그런데 장내 세균의 구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최근 방대한 세균 유전자 해독이 가능해지면서 이 같은 장내 세균의 구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비만을 유발하는 ‘Firmicutes’이다. 장내에 이 균이 많은 사람일수록 비만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조만간 이 박테리아를 조절해 비만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의학기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 장내 세균이 암이나 알레르기 질환, 감염증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대변은행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1일 1,000명당 31.7명으로, OECD 12개국 평균 보다 35%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남용으로 장내 미생물 균형이 망가져 장 질환을 겪는 환자의 사례가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는 만큼 대변이식술이 향후 국내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변이식 가능한 건강한 똥 찾기 쉽지 않아

그러나 대변이식술을 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건강한 똥을 찾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변은행이 애타게 찾는 ‘건강한 똥’이란 어떤 것일까? 풍부하고도 다양한 미생물이 균형을 이루며 존재하는 대변을 말한다.

미생물총은 사람마다 그 분포나 구성하는 미생물의 종류, 각 미생물의 숫자가 다 다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치 지문처럼 일란성 쌍둥이조차 같지 않다고 한다.

개개인이 가진 미생물총의 다양성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태아의 장 내부에는 미생물이 전혀 없지만 태어날 때 산도를 통과하면서 처음 미생물과 접촉하게 되고, 모유수유를 통해 다양한 미생물과의 공생을 시작한다.

이후 식이습관, 나이, 항생제 등과 같은 약물, 스트레스, 질병 등에 따라 우리 몸의 어떤 미생물은 번성하고, 또 어떤 미생물은 쇠퇴를 하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때 관건은 우리 몸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유익균과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균, 때에 따라 유익균이 되기도 하고 유해균이 되기도 하는 대부분의 미생물(중간균)이 이루는 비율이다.

건강한 장에서는 다양하고도 풍부한 미생물이 함께 존재하며 그 중 유익균이나 중간균이 수적으로 월등히 많아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 이러한 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대변은행이 원하는 ‘황금 똥’이다. 건강하지 않은 똥을 이식했다가는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변이식술용으로 대변을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 100명 중 실제로 대변을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4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대변 샘플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은 흡연이나 음주 등 생활 습관과 현재 건강상태, 과거병력, 가족력, 혈액검사로 알 수 있는 백혈구 수치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여부, 대변 속 해로운 균이나 기생충 감염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비만이거나 고혈압 환자, 변비가 있거나 설사를 자주하는 사람도 대변을 기증할 수 없다.

장의 건강이 육체의 건강은 물론 항노화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앞서도 언급한 대로 장내 미생물을 조절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음식 조절이다. 섭취 음식에 따라 장내 미생물총이 바뀌므로, 유익균을 늘리기 위한 식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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